내가 처음 만난 호영이

호영이 관찰기

 

 

호영이를 처음 봤을 때 작고 하얀 강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몸은 작은데 제 세배만한 옷을 입고 있었다. 가마니 같은 옷 사이로 겨우 드러난 어깨선으로 체구를 짐작했다. 같이 만나기로 한 그 날, 호영이는 커피숍에 먼저 나와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곤 작게 웃으며, 입술을 오물거리며 안녕하세요... 근데 한국말 할 줄 아세요?”라고 물어봤다. 밀양박시 27대손이라고 얘기하려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영어를 몇 마디 던졌다. 호영이는 곧 더듬거리다 이내 유창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 영어 잘하네? 유학다녀왔어?”

? 형도 한국말 잘하시네요? 저는 어렸을 때 미국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들어왔어요

그래도 10년 정도 지났으면 이렇게는 못할텐데.”

엄마가 살고 있기 때문에 잊지 않으려고 해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의 사촌동생 데니를 괜히 건드렸다.

 

얘는 이름이 데니면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

"아씨 형 동생앞에서 쪽팔리게"

 

-

-

합숙생활을 시작하고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호영이와 나는 딱 12살 차이가 난다. 내가 호영이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느낀 순간 호영이는 조금씩 말을 내리고 있었다. 늦게 태어난 친동생같았다. 작은 강아지 같았지만 호영이는 어리광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내가 방송국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오느라 늦게 오는 날엔 호영이가 꼭 그 휑한 거실에서 나를 기다렸다. “형 많이 힘들었지?” “형 고생했어” “형 밥은 먹었어? 라면 끓여줄까?”


김치넣고 파넣고, 계란은 넣지말고 조금 칼칼하게 끓여달라고 하면 호영이는 소매를 걷어부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라면 두 봉지를 꺼내고, 김치를 썰고 파를 다듬고 냄비에 물을 올리고 작고 조용한 집에 냄비 물 끓는 소리, 라면봉지 뜯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화장실에서 발을 닦고 나오면 호영이는 그새 상에 라면 두 개와 찬밥 한그릇과 맥주한캔을 봐놓고 기다리고 있다. 혼자 먹으면 심심할테니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겠다고도 했다.

 

형 오늘은 무슨 촬영했어?”

오늘 그때 말한 맥주 광고 있잖아? 그거 찍고왔어

광고찍느라 늦었구나~ 힘들었겠다

어차피 기다리는게 일이라 괜찮아! 출연료 받으면 장좀 보러가자

! 벌써 설렌다.”

촬영 끝난 시간이 버스 막차 다닐시간.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집 근처로 오는 버스는 이미 지나갔고,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주는 버스를 잡아탔다. 한시간을 꽁꽁언길을 걸어왔다. 하루종일 먹은것이라곤 촬영장에서 준 쥬스나 과자같은 것이 전부다. 그것도 눈치보여 많이 먹을 수 없었다. 촬영 끝날 때 간식테이블을 보니 거의 그대로다. 저것 그대로 싸가지고 r가면 애들이 참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호영이는 내가 라면 2개와 밥한그릇을 비울때까지 옆에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오늘 집에 다녀온다고 했지? 물건좀 챙겨왔어?”

? ..”

반응이 왜그래 무슨일있었어?”

아빠 마주쳤어아빠 없는 시간에 갔다오려고 했는데 아빠가 있더라고

 

나나 데니와 다르게 그나마 부유하게 자란 호영이가 왜 이런 낡아빠진 숙소에서 더러운 우리들과 함께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이야기 꺼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항상 웃고 다니지만 때때로 호영이의 결핍들이 드러났다. 한번 집에 다녀오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했다. 집에 다녀와선 항상 주눅이 들어있다. 아직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숙소에서 매일 지낼수도 없다. 곧 겨울방학이고, 겨울방학이 지나면 졸업이다. 호영이는 졸업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호영이는 제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난적이 있다. 호영이가 수능시험을 보지 않았다.

 

호영아 너는 이렇게 사는게 행복하냐?”

응 형들도 있고 태우도 있고 너무 재미있어

먹고싶은것도 마음대로 못먹고 주변에 무덤이라 놀만한데도 없는데, 너는 니가 마음만 먹고 하려고 들면 집에서 지원도 빵빵하게 해줄텐데, 왜 한치 앞도 안보이는 이곳에서 이고생을 하냐

나는 집에 있는것보다 여기서 우리가 같이 사는게 제일 좋아. 나는 우리 같이 데뷔하는 것을 목표로 마음먹었구 하려구 들구있어 형나 같이 데뷔하는거 싫어서 그런말 하는거 아니지?”

 

쌍까풀 없는 눈, 웃고있을땐 모르지만 웃지 않을땐 깨나 날카롭고 차갑다. 오똑하게 솟아있는 코와 오밀조밀한 입술, 남자다운 얼굴형아래 하얗고 고운 목. 호영이는 내가 살며 만난 사람중에 가장 아름답다. 마음도 예쁘고, 몸도 물론 예쁘다. 꽃을 보면 그 꽃을 따고싶은것처럼 나는 평생 호영이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무슨소리야! 우리중에 그나마 너 없으면 우린정말 떼레비에 못나가!”

 

 

[호영아 오랜만에 형이랑 자자]

“호영아 오늘 오랜만에 형이랑 자자”   콘서트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곱창에 맥주한잔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밤 11시까지 연습을 하고 새벽 2시까지 뒷풀이를 했다. 이런 생활을 3개월째 하고 있다. 곧 오십이라고, 애아빠라고 봐주는거 없다. 가끔 다음 날 새벽부터 나가야 한다고 하면 군말없이 보... » 내용보기